7병 2어의 기적을 경험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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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셔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생생한 기적은 우리 삶의 현장 도처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기적에 동참하려면, 영적, 육적 필요를 가장 잘 아시고 채워주시는 선한 목자와 그 뜻을 알고 순종해야 한다. 문제는 완악함과 탐욕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없으며, 기적의 현장에서도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해서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암담한 현실에서 결핍을 메우시고 균형을 잡아주시는 주의 기적을 경험하며 은혜 나누기를 소원한다.
오병이어나 칠병이어 같은 이적을 몇 번 경험했다. 그 중 20명분으로 60여명이 이틀을 먹은 적이 있다. 춥고 배고픈 청년들과 함께 난방이 없는 판자 집에서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천으로 싸서 품에 안고 성경공부 할 때의 일이다. 각 지방에서 말씀을 배우러 온 학생들과 함께 구정을 맞았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하루 두 끼 식사를 만들어 먹는데 아내는 명절임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명절 특식(만두국)을 나누고 싶어 했다.
집에 있는 식재료를 모아보니 약 20명분 정도였다. 당시 학생이 30명이고 섬기는 이가 5명 이었다. 량이 부족하면 국수라도 사서 더 넣으려는 계획으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좁은 마당에 솥을 걸고 끓이는데 워낙 추워서 정신없이 만들었다. 국수를 사러갈 정신도 없었다. 한 참을 준비하는 중에 상급반 과정을 공부하는 30여명의 신학생들이 또 왔다. 시간이 되어 배식을 하는데 학생들이 너무 맛있게 먹었다. 추운 날씨에 따뜻하고 구수한 만둣국이니... 얼마나 맛있게 잘 먹는지 그 모습을 보며 흐믓 하면서도 초조해 졌다. 만둣국이 부족할 것 같아서였다. 우리도 함께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강의를 진행해서 늦은 시간에 마쳤다.
다음날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다. 몇몇 학생들이 만둣국을 먹는 것을 보았다. 누가 언제, 어떻게 준비를 하였느냐고 물었더니 어제 먹고 남은 것을 데워 먹는다고 했다. 어제 모자랐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이냐고 다시 물었다. 자신들도 잘 모르겠는데 솥에 만둣국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식사시간에 도착한 상급반 30명의 학생들도 함께 먹었고 지금 같이 먹는다니 너무 놀라웠다. 분명히 20명분이었는데 60여명이 먹고 남았다? 그것도 이틀간 계속 먹는다??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솥에 계속 남아 있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학생들과 우리부부는 자각하지 못했다. 복음서에 기록 된 오병이어, 칠병이어와 같은 기적이 나타났을 때, 정작 그 상황보다 이상히 여긴 제자들의 모습과 닮았던 것이다. “무리의 필요가 느껴지면 먼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기적을 예비하시고 동참케 하시는 긍휼과 사랑인 것을 세삼 깨닫게 되었다.
광야에서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를 축사하신 후 4000명을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가 남는 빈들의 잔치(막 8:5-9)에 참예하는 방법은 주님의 긍휼을 구하고 나누는 것이다.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을 살피시고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만물과 더불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분이시다. 우리의 믿음 없음보다 예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이 더 크신 것이다. 비결은 주님께서는 지금도 광야에서 기진한 이들과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영적, 육적 필요를 신실하게 제공하심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드리는 작은 힘을 받으시어 많은 이웃들의 부족함을 채워 주시는 도구로 사용해 주신다. 예수님의 긍휼과 능력 안에서 사는 것을 신뢰하고 감사하며 보이지 않게 일하심에 참예하는 것이 비결이다.
상황과 환경을 초월해 역사하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감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일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다. 암담한 현실에서도 기대하고 기도함으로 우리의 삶을 기적으로 변화시키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먹이시고 입히시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매사에 주를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면, 생명의 떡, 그 자체이신 주님을 경험하게 된다. 아울러 그 목자의 심정으로 영과 육의 필요를 채워 줄 지체들을 돕는 다면 기적의 동참자가 될 수 있다. 온전한 순종으로 주님의 긍휼을 나누는 동역자가 되면 기적이 일생이 되는 어마어마한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표적이 없어도, 생명의 떡이 되어주신 주님과 말씀을 믿고, 약속을 기다리며 순종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신앙생활이 기적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