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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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준 목사님께.
먼저 귀한시간 내 주셔서 우문현답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평소 가지고 있던 의문인데 마땅히 물어볼 곳도 없고
누구라도 명쾌한 답을 줄 수 없는 성질의 질문이라 생각하여
혼자서 외골수로 의문만 증폭시켜왔는데 성심성의로 풀어주셔서 많은 도움되었습니다.
목사님의 풍부한 목회경험과 박학다식한 성경지식
그리고 심오한 신앙과 철학,
그리고 어리석은 질문도 기꺼이 받아주심에 경의와 감사를 표합니다.
사실 역사이전 그것도 한참이전의 태초의 일을 누가 증명할 수 있으며 창조주의 생각과 능력
그리고 계획을 한낱 피조물인 인간이 낱낱히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과의 상담을 통해
질문자체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지혜를 배운 것 같습니다.
단편적이고 편협한 성경지식과 어줍쨚은 상식으로 드린 질문을 과대평가해 주셔서 민망합니다만 울타리안의 양무리 뿐 아니라 밖의 염소를 구원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시니 감히 용기를 내어 그 동안 질문했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상담시 시간관계상 또는 배석자가 불편할까봐 못했던 말을 보탰으며
일부는 목사님의 가르침에 재 반론하는 형태로 첨삭했으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글로
옮기다 보니 다소 공격적이고 당돌한 말투가 됨과 질문시 경어를 사용하지 많음을 용서하십시오.
혹시 질문에 문자로 답 글을 주실 계획이 있으시다면 저에게도 보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1. 자유의지에 관하여.
창세부터 종말까지의 역사가 이미 다 정해져 있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도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사실은 없는 것 아닌가? 인간에게는 자유의지이나 하나님관점에서는 정해진 운명 아닌가?
에덴동산에서 사탄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먹을 것이라는 것부터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을 배치시켜서 타락의 길로 아담을 인류를 유도 한 건 아닌가?
예정론에 의하면 이미 구원받을 백성은 정해져 있으니
별도의 노력 없이도 구원받을 자는 결국에는 구원받게 되고
예정에 없던 자는 신앙생활유무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구원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신의 뜻이라면 수긍할 수밖에 없으나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너무 불공정한 것이 아닌가? 십자가에 달려 구원받은 강도는 범죄를 저지르다 마지막에 구원받은 반면 신도와 간통현장에서 피신하다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은 목사는 헛수고 신앙생활만 하다가 결국 지옥으로 가고..
이런 결과라면 세상의 즐거움을 절제하며 신앙 생활하는 자유의지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2. 하나님의 능력에 관하여.
현재 과학으로 측정 가능한 우주의 크기가 930억 광년이라고 하는데 말씀 하나만으로
불필요(?)할 정도로 광활한 우주를 만드신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굳이 흙을 사용하셨을까? 손짓한번으로 아니 말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으셨을까?
굳이 물질(흙)을 사용하신 건 우주창조보다 인간창조가 더 의미 있는 일이였기 때문이었을까?
선악과범죄이후 에덴동산 생명나무를 인간이 신과 같이 되는 걸 방지코자 인간으로 부터 지키기 위해서 화염검과 천사를 배치시킨 것 은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뭔가 어울리지 않지 않는가?
욥기에 하마(?)로 묘사되는 동물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나님 자신도 상대하기가 버겁다고 하셨는데 이건 무슨 뜻인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에 대한 어울리지 않는 서술이 아닌가?
구약 곳곳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사업을 하실 때
우주를 창조하실 때처럼 말씀한마디로 일을 하시지 않으시고 귿이 재앙을 이용하신다 던지,
천사를 보낸다던지, 직접 나타나시거나 현몽하시거나 음성으로 일하시는데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는가? 인간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기에 전지전능성과 match가 잘 안되는 듯한데..
3. 하나님의 성격에 관하여.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의 성격이 너무도 판이하다.
구약의 하나님은 엑소더스 때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려 수많은 백성을 못 살게하고 단순히 이집트왕의 명령으로 이스라엘을 쫓은 수 많은 병사들을 갈라진 바닷물을 합쳐서 수장시켰다.
그보다는 처음부터 이집트왕의 마음을 감화시켜 순순히 출애굽시키게 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또한 가나안 정복시 거주민들을 남녀노소 심지어 가축까지 몰살시키는가 하면
의인 5명이 없다는 이유로 아브라함의 구원소망에도 불구하고
결국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를 통채로 불살랐다. 어린아이와 갓난아이도 있었을 텐데...
만약 현대도시에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이 내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노아의 방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인간들이 타락했기로서니
영아들과 어린아이는 물론 말 못하는 짐승까지 모조리 수장시켰다.
하나님이 택한 직계부족이 아니면 다 몰살시켜도 좋단 말인가?
몰살당한 자들 속에 무지로 또는 다른 이유로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단 한명도 없었단 말인가?
또한 전지전능하여 그런 사태가 일어날 것을 아시면서도
천지창조를 후회하며 물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인가?
그리고 홍수이후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인간들은 바벨탑을 쌓는 등으로 타락했는데 그걸 모르실리 없는 하나님이....
구약의 하나님은 전 우주의 하나님도,
아니 지구의 하나님도 아니라 오직 이스라엘민족만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 반하여 예수님께서 전하는 메세지는 전 인류에게 전하는 말씀일 뿐 아니라 이웃사랑을 넘어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사랑이란 예수님이 목숨으로 인류를 대속하신 것처럼 하나뿐인 자기목숨을 내어놓을 수있는 것인데 소중한 목숨을 원수를 구하기 위해서 사용하라니..
이처럼 야훼하나님과 예수님의 성격은 너무나 판이하다. 성부와 성자의 이토록 상반된 성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4. 성경의 무오류성에 관하여.
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씌여진 말씀이라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경 외에도 수많은 외경이 있고 정/ 외경의 선별 작업도 종교인들이 즉, 인간들이 한 것이다. 선별과정에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신 것일까?
그리고 번역도 인간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번역상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번역과정에 참여하여 오류가 없게 하지 않으셨을까?
창세기에 창세 4일째 태양과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다고 한다. 이것은 현재 과학으로 밝혀진, 지구는 우주의 먼지 같은 행성, 그것도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여러 행성중 하나라는 우주관에 비춰볼 때 이치에 합당하지 않는다. 질량과 크기 등을 생각할 때 태양이 먼저 형성된 후에나 또는 최대한으로 잡아도 같은 시점에 지구가 만들어졌다 보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바벨탑의 규모를 생각해 볼 때 그때 이미 도량형과 문자가 사용되었음직하다. 그렇다면 인류의 언어와 문자는 애초에 하나이었는데 바벨이후로 언어를 흩으셨다고 하더라도 그 근본은 하나였어야 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크게 나누더라도 언어는 3종류로 나뉘고 문자도 그 형태가 완전히 달라서 도저히 같은 하나의 문자에서 파생되었다고 볼 수 없는 문자가 많은 것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나?
5. 기독교만이 유일한 길인가?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상식적 또는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영접을 체험한 분들은 체험을 강조한다. 체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지만 다른 종교에서도 신과 만나는 체험담이 산재하고 이는 사이비종교나 무속신앙에서도 마찬가지다. 체험을 신앙의 출발선으로 둘 때 다른 종교의 체험과 구별할 수 있는 객관적인 차이점은 있는 것인가?
또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종교라고 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해서 뜨거운 성도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앙이 식고
결국은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이 체험은 가짜인 것인가?
예수님을 체험하고서도 그 생활/언행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것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다른 종교 특히 기독교의 형제종교라 할 수 있는 천주교에는 구원이 없나?
천주교는 같은 하나님, 같은 예수님을 섬기는데..
또한 배 다른 형제종교인 이슬람교 또한 어떠한가? 천주교, 이슬람교도 전부 이단인가?
불교나 힌두교 등 다른 종교는 전부 사탄의 장난인 것인가?
타 종교지도자들이 전하는 좋은 교훈들은 어떻게 취급해야 하나?
그들을 대할 때 사탄숭배자로 취급해야 하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는 힘들지 않나?
현실적으로는 그들의 종교를 어느 정도 존중해주고 속으로는 사탄숭배자라고 경멸해야 하나,
아니면 타협 없이 타종교의 잘못된 점을 지적, 설득하여 전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나?
접근하기 힘든 오지 또는 정치적 이유로 오늘 날에도
기독교가 보급되지 않은 곳이 꽤 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나?
신앙 때문에 순교까지 하는 사람도 있고 비교적 안락한 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천국에서의 상급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굳이 순교할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하나?
그냥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은가?
천국에서는 상급이 적다하더라도 큰 차별이 없을테니 괜챦지 않은가?
6. 참다운 신앙생활에 관하여.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는데 교회는 음으로 양으로 제약하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술 취하지 말라고 한 말씀을 아예 금주를 권면하고 흡연자도 못마땅해 하고
친목도모겸 하는 가벼운 도박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분위기다.
이런 맥락이라면 TV드라마시청도 가요음악도 참다운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신자로서 느끼는 생각은 이러한 것들을 배제하고 생활해야 한다면 참 답답할 것이다.
구약에 보면 금기가 많다. 음식에 관하여도 그러한데 새우나 돼지고기는 부정한 것이라 하는데 현대생활에서 이런 식재료를 금기시 한다면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한 이후로 이런 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해석이 있는데
그렇다면 구약시대에는 부정한 것이 신약시대에는 정한 것으로 바뀌었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안식일 준수에 대한 규정도 현대 생활과는 너무나 동떨어져있다.
어쩔 수 없이 주일에 일해야 하는 사람의 경우는 어쩌란 말인가?
주일을 성스럽게 보내야 하는게 바람직하다면 친목활동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금해야 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셨슴으로 이런 제약도 완전히 풀린 것인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원수를 사랑하라하셨는데 원수는 커녕 교회내에서 반목하고 시기하고 험담하고 이익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고 하는 현상을 자주 보곤한다. 말로는 하나님을 찾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외의 것 특히 돈 때문에 관계가 악화되고 서로 비방하는 경우가 많다. 현상이 이러 할진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공허한 문구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다.
그리고 철천지원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나?
원수를 용서하는 것만도 힘든데 그 원수를 사랑하라고?
사랑이라 함은 상대를 위하여 하나뿐인 목숨을 내 놓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부모자식 간에도 힘든 일을 원수를 위해서 하라는 말씀은 인간이 지키기는 힘든 말씀이 아닌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거리에 넘쳐나는 홈리스들에게 나의 재산과 성심을 다 쏟으란 말인가?
그리하여 내가 홈리스가 되는게 맞다는 말인가? 아니면 하나의 경구에 불과한 것인가?
어느 수준까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맞나? 그리고 제한적 사랑이라면 사랑한다는 표현이 맞나?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이 세상은 원래는 하나님나라지만
잠시 사탄이 지배하도록 내어준 상태라 한다.
그렇다면 중세의 수도사처럼 이 세상을 등지고 기도원에서 살아야 하나?
아니면 날마다 매 순간마다 넘어지고 깨지는 걸 알면서도 세상과 더불어 사는 것이 맞나?
7. 기타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하여.
기독교에서는 동성애를 죄악시하는데 욕망을 위하여 하는 동성애는 같은 의견이나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혼과 육이 잘못 결합되어 어쩔 수 없이 동성애를 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이런 경우는 하나님의 실수인가? 아니면 다른 뜻이 계신건가?
그도 아니면 그들은 사탄의 장난으로 태어난 것인가?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신생아들이 남녀의 양쪽 성기를 갖고 태어난다.
이런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질병은 사탄의 장난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거의 대부분이 원인이 규명이 되고 있다.
질병을 앓게 되는 것은 죄 때문에 시험을 당하는 것인가?
사탄의 장난 때문인가? 아니면 단순히 바이러스나 신체적 이상 때문인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자 오래지만 교회는 기독교 신자를 정치적 리더로 선호한다. 부패하고
무능한 신자리더와 청렴하고 유능한 불신자 리더가 있다면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옳은가?
부를 축적하여 자손에게 상속하는 것이 맞나, 아니면 이웃이나 교회,
또는 사회에 환원하는 게 맞나? 아니면
아예 절제된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빼고 이웃에게 환원하며 부를 축적하지 않는 것이 맞나?
(얼마 전 우리 교회에 오셔서 새 가족이 된 형제의 글인데 동의를 받고 올립니다.)